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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의 말씀은 입에 쓴 약과 같다

샤 인 2008. 7. 25. 09:15
    부처님의 말씀은 입에 쓴 약과 같다 부처님은 자신에 대해서나 담마 즉 자신의 가르침에 대해서 일반 사람들에게 신심을 강제로 강요하지 않으셨으니 이것이 다른 어떤 종교 창시자보다도 다른 점이라고 할 수 있으며 특성이라고 할 수 있다. 부처님께서 자신이나 그 가르침에도 공개된 비판을 허락하신 것은 너무도 완벽하기 때문이며 진실하기 때문이며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라 중생을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수행법에 대해서도 비구 제자들로 하여금 맹목적 신앙에 의한 실천으로 헛된 세월을 보내게 한 것이 아니라 먼저 조사하고 실질적 수행에 적용하여 체험을 통한 확신을 갖도록 권유하셨다. 또 스스로 자신의 마음에서 체험을 바탕으로 우러나오는 신심을 인정하셨으며 일반 신자들에게도 그와같이 되게 하기 위해서 갖가지 방편과 수행방법을 제시하여 각기 개성에 맞는 것을 선택하여 가장 정확하고 바르며 빠르게 체험하고 목표에 도달하도록 권유하시고 격려하셨다. 부처님의 설법은 언제나 듣는 이로 하여금 의미깊고, 이익됨이 있게 하셨으며, 어떤 때는 칭찬으로 수행자를 격려하시고 어떤 때는 잘못을 예리하게 지적 비판 하셨다. 대체적으로 사람들은 비록 의미없는 말일지라도 칭찬하는 것을 좋아하는데 이것은 중생이 어리석기 때문이다. 몸에 좋은 약은 입에 쓰다는 것을 알지만 사람들이 우선 입에 쓴 약을 싫어하니까 제약회사에서는 약에 설탕을 발라서 약을 삼키는데 달콤하도록 하여 입과 맛을 속인다. 그러나 사실상 어떤 병에는 당분이 부작용 내지 약효를 없애거나 줄여버리는 경우도 있는 것을 보통사람들은 잘 모른다. 마찬가지로 종교에서도 우선 믿기 쉽고 신앙심 내기 쉽도록 달콤한 말과 쉬운 방법으로 사람들을 미혹시켜 다시 헤어날 수 없는 사견에 떨어져 생사윤회의 길을 한량없이 헤매이게 하는 것이다. 어떤 약은 매우 쓰기 때문에 먹기 어려우나 몸이나 병을 치료하는 목적에는 좋은 것이다. 부처님 말씀도 이와 똑같이 깨달음에 이르는 좋은 길이지만 행하기는 어려워, 귀에 거슬리기도 하고 마음에 부담이 되며 수행하기 힘들게 생각되기도 한다. 그러나 어리석은 사람들은 그렇게 어렵고 귀에 거슬리고 부담스럽게 들릴지라도 지혜로운 사람들은 들엇 기쁘고 자신의 수행에 도움이 되는 것으로 받아들이며 깊은 뜻을 곧바로 이해하게 된다. 왜냐하면 부처님의 가르침은 원인과 결과에 대한 현실적인 진리이고, 합리적이고 논리적이고 사실적이며, 부처님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라 중생을 위한 봉사와 희생의 진리이기 때문이다. 또, 그 가르침은 직접 체험을 통하여 곧바로 증명할 수 있으며, 완전히 공개되어 모든이의 비판과 조사를 받아들이므로 신심이 바르게 일어나게끔 되어있기 때문이다. 맹목적인 신앙심을 금한 것은 오직 불교뿐이라고 할 수 있다. 사실상 다른 종교의 가르침에서는 편리하게 사람들은 지배하기 위해서 맹목적인 신앙을 강요하는데 비해 불교에서의 신심은 사실적이며, 원인과 결과의 관계에 바탕을 두고 실질적 체험을 통해서 일어나도록 하며 그렇게 해서 일어나는 신심은 침다운 신심이 되는 것이니 7가지 이익을 곧바로 얻게 된다. 첫째는 모든 불안과 근심 걱정에서 벗어나고, 둘째는 슬픔과 비탄과 정신적 압박에서 벗어나는 것이며, 셋째는 육체적 고통에서 벗어나고, 넷째는 모든 버뇌에서 벗어나는 것이요, 다섯째는 진정한 자유인이 되는 것이며, 여섯째는 금생에 행복하고 평화로우며, 일곱째는 다음 생애에 대해서 더욱 행복하고 즐거움이 보장되는 것이다. 쉬운 예로서, 좋은 가정 환경 속에서 부모님들의 사랑과 가정교육을 잘 받으며 편안하고 행복하게 자라면서 필요되는 학교교육과 사회교육을 잘 받은 사람은 성장하여 가족을 떠나 자신이 독립된 생활을 하더라도 좋은 직장에 취직되어 충분한 생활 보장을 받기 때문에 행복하고 평화롭게 자기 인생을 영위해 나가는 것과 똑 같은 이치요, 진리인 것이다. 누구나가 위빠싸나 마음집중법을 수행하면 위의 7가지 이익이 곧바로 성취되는데 이것은 직접 체험을 통해서 알 수 있는 것이다. 부처님께서는, 세상 사람들이 위빠싸나 수행법을 전혀 모르더라도 부처님의 설법을 듣거나 경전을 보고서 뜻을 내어 실천 수행하며 깨달음에 이르고 자신의 깨달음에 대한 체험을 이웃과 함께 나누는 것을 빠째카싣다(Pacckhasiddha, 즉 다른이의 가르침을 따라 실천하여 뜻이 성취된다)라고 말씀하셨다. 부처님의 법문을 듣는다고 해서 누구나 신심이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듣는 이의 목적의식이 분명하고 이해가 바르게 되어야 하며, 원인과 결과에 대한 합리적인 인식능력이 있는 사람이라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어떠한 가르침을 통해서라도 모든 번뇌를 제거하고 순수하고 깨끗한 마음을 지니겠다는 결정심이 있어야만 부처님의 설법이 자신의 뜻에 계합되어 바른 신심이 나타나게 된다. 그리하여 담마는 계. 정. 혜를 적용 실천한다는 뜻을 포함하고 있고 마음을 청정하고 평화롭게 해주는 것이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 법을 보는 자 나(부처님)을 보고, 나(부처님)을 보는 자는 법을 본다."라고 하셨다. 만약에 법문을 듣는 자가 파괴적이고 맹목적 비판적인 마음을 가졌다면 이 사람은 분별적이고 합리적인 사고를 갖추지 못했기 때문에 명확한 지혜를 얻지 못하고 평화를 갖지 못한다. 그러나 바른 생각을 가지고 건설적이며 창조적이요 합리적인 마음으로 보든 번뇌와 생사윤회에서 벗어나겠다는 결정심과 목적의식이 분명하였을 때 법(담마)은 길잡이가 되고 어두운 밤에 횃불이 되며 지혜를 갖게 해주며 자신의 뜻을 성취케 해주는 힘이 되는 것이다. 부처님의 설법 조건은 듣는 이가 이익이 있을 때, 듣기를 원할 때, 사실이요 진실이며 즉시 확인할 수 있는 것을 바탕으로 실증적이고 단순성이 있으며 사실성이 있게 하신 것으로 듣는 사람을 위한 것이다. 부처님의 설법 방식은 비유 은유적이며 문담 형식이요, 반대 질문식이며 게송을 읊으시거나 설화를 통한 듣는자의 이해 증진과 사실에 대한 분석적 지혜로서 일깨우시거나 아니면 침묵하시는 것이다. 어떠한 질문이든 자세한 설명으로 잘문자의 이해를 돕는 것이며 침묵은 설명으로서 표현 할 수 없을 때가 아니라 의미없고 현학적, 형이상학적, 관념적인 질문일 때에 질문자의 생, 노, 병, 사라는 큰 문제 해결에 도움되지 못하는 것일 때 이시었다.
    -거해스님

일 심(一心)
늘 제 곁에서 함께하시는 당신
비록 사랑한다 입버릇 처럼 
제가 당신에게 표현하지는 못하나
당신를 아끼고 싶은 마음은 변함이 없지요
비가 오나 바람이 오나
두 사람 한마음으로 서로 아끼고
사랑하겠다던  그 약속
언약할수는 없으나
그러나 그러나
제가 당신 믿고 있다는 사실만큼은
알고 계시는지요